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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전시회

여백이 디렉팅한 전시회 <오늘, 내 마음을 읽는 시간> - 기획편

by 여백을쓰다 2020. 8. 29.

안녕하세요. 여백을 쓰다의 여백입니다. 오늘은 좀 여러분들께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완전 사적인 이야기는 아니구요. 제 커리어에 관한 이야기에요. 그냥 언젠가는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오늘따라 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조심스레 꺼내보아요. 들어주실 거죠?

 

저에게 관심 있으신 분은 아시겠지만, 제 원래 본업은 기획자입니다. 저는 2014년도부터 직장을 다녔고, 지금까지 한 번도 기획이라는 일을 놓은 적이 없어요. 디자이너는 기획 일을 하면서 동시에 같이 시작하게 되었고, 그 후, 디자인 작업은 대부분 개인작업,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어요. 저는 전시기획자로 시작을 해서 콘텐츠 기획, 그리고 서비스 기획을 넘어서 다시 전시 기획을 했었죠. '기획'이라는 말 앞에 붙은 접두어는 그냥 우리가 회사에 다니면 늘상 붙는 그 main job description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편할 거 같아요. 오늘은 그중에서도 전시회 기획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우선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제가 다녔던 2개의 전시회사는 여러분들이 잘 알고 계시는 대림미술관, 디뮤지엄 등에서 열리는 갤러리 혹은 미술, 예술 등과 관련된 전시회가 아닌 전 세계의 무역과 관련된 박람회입니다.

저는 2016년도에 스타트업에 콘텐츠 매니저로 입사를 하게 되는데, 그 회사는 여러분들께서 아시는 분은 아실지 모르겠으나 그 당시 트렌드 키워드는 '힐링 (Healing)'이라는 키워드가 대세였던 시절이었죠. 아마 다른 건 몰라도 '#달콤창고'라는 건 들어보셨을 거예요.

 

오래돼서 그런지 이미지가 구리군요


따뜻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지하철역 사물함에 익명의 사람들이

쪽지나 달콤한 과자, 사탕 등을 놓고 공유하는 사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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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창고


네, 바로 그 달콤창고를 만든 회사에서 저는 근무하게 되었어요. (달콤창고는 제가 기획한 프로젝트는 아니에요) 제가 그 회사에 지원했던 가장 큰 이유는 저는 그 당시 A 어플리케이션을 사용하는 유저였기 때문이고, 이런 세상 따뜻한 앱이 있나 하고 열심히 활동하다가 잡 포스팅을 보고 유저가 지원한 케이스였죠. 저는 거기서 정말 수많은 콘텐츠를 기획하고 크고 작은 프로젝트들을 했었어요. 그 당시엔 밤을 지새우는 시절이 많았는데, 그래도 뭐랄까 새로운 것을 창작하고 기획하는 게 저는 참 좋았어요.


마지막 프로젝트, 전시회 <오늘, 내 마음을 읽는 시간>

그중에서도 저는 오늘 제 기억에 가장 크게 남았던 마지막 프로젝트인 <오늘, 내 마음을 읽는 시간>이라는 전시회에 대해서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이 프로젝트 바로 직전, 앱에 있는 콘텐츠들을 묶어 책 <오늘, 내 마음을 읽었습니다>으로 펴냈고 반응이 좋았었는데 문제는 어플리케이션에 가입하는 수는 늘 아쉬웠어요.

'오늘 내 마음을 읽었습니다' 아시는 분 손?

 

그래서 여러 가지 회의 끝에 앱 내에 있는 콘텐츠를 구성해서 오프라인 전시회를 열어보면 어떨까라는 의견이 모아졌고, 저는 제 위에 HEAD님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전시회의 A부터 Z까지 모든 것을 기획하고 디렉팅 하는 역할을 맡았어요. 스타트업의 생태계를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레벨에 관계없이 프로젝트를 맡은 사람은 기획부터 실행까지 모두 자신의 몫이죠. 특히 작은 스타트업이라면 더더욱 그렇구요. 저한텐 정말 그 준비했던 1.5달이 죽음이었어요.


업계 최초 체험형 전시회

지금이야 체험형 전시회도 많고 그랬었는데, 그 당시에는 정말 그런 전시회가 드물었을뿐더러 특히 어플리케이션을 만드는 회사에서 앱 내의 콘텐츠들을 구성하여서 전시회를 했던 건 우리가 처음으로 알고 있어요.

저는 맨땅에 헤딩을 하는 심정으로 전시회 공간 구성부터 어떤 콘텐츠를 담아야 할지까지 정말 모든 걸 1인 기업처럼 진행했었어요. 전 지금도 제가 지금까지 한 모든 프로젝트 중에 제일 잘했고 뿌듯했던 순간을 꼽으라면 이 프로젝트를 선택할게요. 그리고,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프로젝트를 선택하라고 해도 이걸 선택할게요.

 

이런 식으로 전시회 공간까지 구성하며 왜 그렇게 미련하게 일했나 몰라요. ㅎㅎ 정말 전시회를 기획하는데 1.5달은 사실 말도 안 되는 미친 짓인데, 전 그걸 했어요. 그것도 저 혼자서요. 물론 전시회가 열리고선 도와주셨지만요. (지금은 유명광고회사를 다니시는 그 당시 인턴 A님, 퇴사하고도 도와주시러 오셨던 K님께 지금도 생각하면 감사해요) 비롯 다른 전시회들에 비하면 소규모 공간이지만, 이게 진짜 보통 일이 아니었답니다.

 

제가 기획을 하면서 가장 초점을 맞췄던 건, 온라인상의 익명의 공간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나눴던 사람들이 이 오프라인 공간에 와서도 그 따스함을 더 느끼고 그 마음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줬으면 하는 거였어요. 지금부터 제가 기획한 전시회를 소개해드릴게요.


어서와요, 잘 왔어요, 기다렸어요


1관: 마음을 읽다

오늘은, 여기서 조금 쉬다가요

아무 이야기하지 않아도 돼요. 그냥 들어주세요.

우리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고, 듣고, 읽다 보면

내 마음이 먼저 말을 걸어올 테니까요.

 

1관은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읽는 것으로 구성했어요. 원래 뭐든 마음을 열기 위해선 남의 마음을 먼저 읽고 나와 같은 사연을 가진 사람을 찾는 게 필요할 때가 있죠. 우선, 앱 내에 있는 인기 있는 콘텐츠들을 모아 아래와 같이 보여주었어요.


#누군가의 사는 이야기

보고, 듣고, 공감하고.

 

그리고 전시회가 열리기 전 각 연령대 별로, 앱 내 콘텐츠 중에서 이미 콘텐츠를 통해 듣고 싶은 말을 모아서 나열했어요. 힐링 앱이라서 그런지 참 좋은 말들이 너무나 많죠?


#듣고싶은말

듣고 싶은 말 혹시 있어요?

한 번 생각해봐요.

지금 당신에게 해 줄게요.

#듣고싶은말 있어요?


#우리동네삼행시

대한민국 동네 개수, 총 2076개

그중에서 내가 살고 있는 우리 동네 삼행시는

어떤 방식으로 소개되는지 궁금해요.

혹시 내가 살고 있는 곳의

#우리동네삼행시가 없거나

더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하고 싶다면

지금 바로 채워주세요.

저 콘크리트 벽에 하나하나 붙인다고 진짜 죽는 줄.


2관: 마음을 보다

서툴러도 마음을 숨기지 말아요

꾸미지 않은 당신이 좋아요.

마음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면 가만히 들여다보는 거예요.

처음에는 서툴겠지만, 점차 나아질 거예요.

그러니 서툴러도 멈추지 말아요.

 

2관에서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본다'라는 컨셉으로 #내마음사진전을 준비했어요. 자신의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한 사진 15점을 선정해서 전시했으며, 전시회가 끝나고 액자와 함께 집으로 배달해드렸어요. 저 액자 나름 세련되고 이뻐요. 저 액자도 제가 다 직접 주문했었어요. ㅎㅎ


#내마음사진전

#내마음사진전

 

마음을 보고, 읽었으면 어느 정도 이제 내 이야기를 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오죠. 그래서 마지막 3관에서는 유명 작가들을 초청해서 블라인드의 공간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말하고 위로받는 힐링의 공간을 준비했어요.


3관: 마음을 말하다

​우리가 들어줄게요

마음 따뜻한 유명 에세이 작가들과

1대 1로 진행되는 블라인드 카페가 열립니다.

이 시간만큼은 진솔하게, 있는 그대로의 당신을 말해주세요.

 

주위를 둘러보세요 #Look Around

 

검은 막으로 들어가면 중간에 큰 거울이 있는데요. 건너편 사람은 볼 수 없는 구조이며, 오직 손만 볼 수 있어요. 아래에 있는 4개의 불은 4가지의 테마인데요. 원하는 테마를 선택한 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하는 공간이랍니다. 이 공간에서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거울일 거 같아요. 거울을 설치한 이유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도록 하는 것이 기획 의도였어요.

 


체험관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말하고 나오면, 다양한 체험들이 준비되어 있어요. 마지막으로 오늘의 느꼈던 마음을 솔직하게 기록하는 시간.


 

#그림일기

자기가 쓴 걸 가져가는 사람도 있었고, 이렇게 붙이고 가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나중엔 자리가 없어서 온 벽을 다 둘렀다는.


 

#진심엽서프로젝트

앱의 컨셉 그대로 익명의 누군가에게 편지를 보내는 컨셉이에요. 우체통에 넣거나 실제로 주소를 적고 가면 해당 편지를 모아 직접 보내주는 그런 거였죠. 마지막 편지발송은 제가 마무리 못하고 나왔네요.


#달콤창고

#달콤창고

역시 뭐니뭐니해도 이 앱의 시그니처는 '달콤창고’. 전시회가 열리는 매일매일 가득 차고, 비워지고, 가득 차고, 비워지고를 반복했어요.


저는 이렇게 전시회가 열렸던 2016년 11월 8일부터 11월 19일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홍대 북티크 뮤지엄에 있었으며, 전시 마지막 날인 20일에는 여기 있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로부터 3일 뒤인 11월 23일에 퇴사를 하게 됩니다.

제가 5년이 지난 이 전시회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말 못 할 아쉬움이 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그리움이 있기 때문이에요. 저는 전시회가 열리는 동안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어요. 그중에서도 저는 아래에 방문해 주셨던 그 '어머니'를 기억해요.

 

저는 그만큼 이 회사를 다녔던 가장 큰 이유가 누군가의 마음에 사랑을 불어넣어 주는 역할을 하고 싶었어요. 저는 그렇기에 크고 작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도 항상 그 부분을 중점적으로 염두에 두면서 진행했었어요. 그러나 일을 하다 보면 느끼시겠지만, 내 의도와는 다르게 흘러갈 때가 많고 또 노력을 해도 원했던 결과를 가져오지 못할 때가 많아요.


전 그래서 기회가 된다면 제가 마무리하지 못했던, 마음속에 늘 생각했던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하려고 해요. 그 프로젝트는 지금 말씀드리기 어렵겠지만, 언젠가 그 시간이 오면 여러분들께 공개할게요. (오래 걸릴지도 몰라요. ㅎㅎㅎ)

오늘 사적인, 저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주셔서 감사드리구요. 오늘은 기획 편이었다면, 다음 시간에는 디자인 편으로 찾아올게요. 제 본격적인 디자인 인생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ㅎ 다들 안녕히 주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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